제목 파이낸셜 게재기사 '이병철 삼성 창업주도 감탄한 ‘수연소면’.. 34년째 조용한 인기' 0  
작성자 대표 관리자 작성일 2013-08-28 10:27:53 조회수 3306
   
 
이병철 삼성 창업주도 감탄한 ‘수연소면’.. 34년째 조용한 인기
기사입력 2013-08-28 03:51기사수정 2013-08-28 03:51

 

<이 기사는 2013년 08월 28일자 신문 2면에 게재되었습니다.>

 

의수로 빚은 신의 국수…"굴곡진 인생 맛이죠"


▲지난 27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 강식품 소면 제조공장에서 강희탁 회장이 건조대에 걸린 소면 가닥들을 정성스럽게 살펴보고 있다.

【 음성(충북)=이병철 기자】 삼성그룹에서 해마다 여름철이면 귀빈용으로 선물하는 수연소면이 있다. 손으로 당겨 면발을 뽑았다고 수연(手延)소면이라 불린다.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생전에 "한국에도 이런 소면이 있구나"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일본에는 맛있는 소면이 있는데, 한국에는 왜 그런 국수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해왔던 호암이 한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명품국수를 발견한 후 즐겨 먹었다는 전언이다. 그때가 1970년대 중반이다.

강식품의 수연소면을 맛본 호암은 당시 제일제당에 직접 지시해 강식품에 밀가루를 납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제일주의'를 경영철학으로 내세운 호암은 "최고의 국수에는 최고의 밀가루가 들어가야 한다"는 믿음과 소신을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호암이 유독 수연국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호암도 창업 초기 대구에서 대구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국수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호암은 대구지역에서 국수사업을 하면서 고객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었다. 호암은 단골 고객들에게 원재료인 밀가루 값이 올라서 손해를 보더라도 변함없이 국수를 같은 가격에 팔았다. 호암의 경영은 경쟁 상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는 고객의 신용이 되어 돌아왔다. 이 신용은 다시 현재의 초일류기업 삼성그룹을 키운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호암의 경영철학이 40여년간 수연소면만 생산해 온 국내 중소기업인 강식품의 강희탁 회장과 맞닿아 있는 셈.

이 회장이 즐기던 수연소면이 '삼성 소면'으로 알려진 것은 4∼5년 사이다. 제일기획 사장이었던 김낙회 대표가 창업주가 즐겼던 소박한 소면을 귀빈들에게 선물했기 때문이다. 그 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도 귀빈들에게 강식품의 수연소면을 선물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지난 27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의 강식품을 찾았다.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26년째이지만 아직도 '삼성 소면'이라고 불릴 정도로 삼성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직원들의 성원에 힘입어 삼성그룹 내 귀빈 선물용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귀빈들의 반응을 타면서 더 유명해졌다. 일반 국수보다 가격이 5배 비싸지만 제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강희탁 강식품 수연소면 회장은 "1979년 이병철 회장이 먹어보고 국내에 이런 소면이 있냐며 놀랐다"고 회상했다. 강 회장은 "이 회장이 먹는 소면을 특별 제작하기 위해 삼성에서 가장 좋은 밀가루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수연소면은 중국이 그 발상지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일본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는 강 회장이 1975년 강식품을 설립하며 유일하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강 회장은 "수연소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38시간의 제조시간이 걸린다"며 "밀가루 냄새가 안 나고 소화가 잘 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2단계의 숙성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또 밀가루 덩어리를 5㎝로 늘리고 숙성하고 이어 15㎝로 늘리고 숙성하는 과정을 반복해 최종 2m 길이의 면을 만들어낸다.

강 회장은 면류업계에선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또 장애를 극복한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굴곡진 세월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냈다.

강 회장은 두 팔이 없다. 한국 전쟁에서 두 팔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전쟁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그는 "당시 상이 군인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 회장 역시 집밖으로 1년 이상 나오지 못했다. 주변의 손가락질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옛 동료가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거기서 옛 동료들의 도움으로 학원을 차렸다. 지금으로 따지면 입시학원이었다. 강 회장은 "먹고살 정도로만 유지됐다"고 했다.

기회는 몇 년 뒤에 찾아왔다. 고모부의 도움으로 제주도에서 돈육 사업을 시작한 것이 성공을 거둔 것.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흑돼지만 먹었어. 지금처럼 분홍 돼지는 외래종이었지. 제주도에서 선교사들이 분홍 돼지를 길렀는데 국내엔 판매가 되지 않았어. 사람들이 처음 보는 돼지종에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지."

결국 일본으로 수출했다. 제주도에서 키운 돼지를 부산으로 옮겨 도축.가공.냉동해 일본으로 수출했다. 강 회장은 "옛날에는 좋은 배가 없어 돼지들이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오면서 살이 쭉쭉 빠졌다"고 말했다. 결국 제주도에 도살·가공 공장을 짓고 일본으로 수출했다. 냉동 창고가 없어 원양어선을 임대해 돼지를 냉동해 보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국내 돼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수출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 "최초로 돼지 수출을 했는데 그 길이 막힌 거야.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

또 2~3년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을 방문해 수연소면을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하게 됐다.

강 회장은 "돼지 공장을 하다 수연소면 공장을 방문해서 보니 그들은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공장을 세울 돈이 없었다.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지니 일본에 친분 있는 사람들이 '하고 싶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당연히 하고 싶다고 했지. 근데 돈이 없다고 했어. 근데 행운이 찾아왔어."

돼지 수출 사업을 하며 신뢰를 쌓았던 일본 사람들이 강 회장을 무상 지원키로 한 것이다. 제조 시설을 만들어주고 기술자까지 파견해줬다.

강 회장도 이에 적극 보답했다. 11년 동안 도움을 준 일본 기업에 독점 공급한 것. 인건비만 남길 정도로 싼 가격에 품질 좋은 제품을 수출했다.

그 후 강 회장은 국내 시장에도 판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넷째 사위인 최우국 대표가 모든 실무를 챙기고 강 회장은 가끔 공장을 방문해 제품을 확인한다. 강 회장은 "한 가지라도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수연소면'이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2017/04/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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