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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앙일보] 'VIP국수' 수연(手延)소면의 명가 강식품 강희탁 회장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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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3-07-25 11: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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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923

 

6·25 때 두 손 잃은 첩보장교 … “인생도 국수도 치대야 차지죠”
[중앙일보] ‘VIP국수’ 수연(手延)소면의 명가 강식품 강희탁 회장

강희탁 강식품 회장이 공장 건조실에서 수연소면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 양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 지금은 의수를 착용하지만 현업에서 뛸 땐 반죽의 상태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의수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음성=강정현 기자]
충북 음성의 ‘강식품’ 공장. 재봉틀처럼 생긴 기계가 철컥철컥 하고 위 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사각틀에 얇은 밀가루 반죽이 감겼다. 반죽이 감긴 틀을 옆으로 걸어 늘였다 놓았다를 몇 차례 반복하자 어느새 얇은 국수가 만들어졌다. ‘손으로 당겼다’는 수연(手延)소면이다.

 강식품의 창업자 강희탁(80) 회장은 197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연소면을 생산한 기업가다.

사실 수연소면은 ‘VIP가 먹는 국수’로 유명하다. 87년 동아원이 주요 거래처 임원들에게 선물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삼성그룹 등 주요 대기업과 은행·증권사 같은 금융권에서도 VIP들에게 선물한다. 지난해 강식품 매출의 절반을 대기업용 선물이 차지했을 정도다. 지난 5년간 매출이 50% 가량 신장한 것 역시 대기업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 알차잖아요. 국수도 똑같아요. 치대야 차지죠.”

 강 회장은 수연소면의 가장 큰 장점으로 쫄깃함을 꼽았다. 일반 소면은 조금만 힘을 주어 집으면 툭 끊어지지만 수연소면은 그렇지 않다. 잘 붇지도 않는다. 일반 소면은 밀가루 반죽을 얇은 구멍이 뚫린 성형틀에 넣고 압축해서 뽑아내지만 수연소면은 잡아당겨 만들기 때문이다. 예전엔 사람이 손으로 늘이던 걸 지금은 기계가 한다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강 회장의 인생도 수연소면을 닮았다. 그는 양쪽 팔꿈치 아래가 없다. 해군 첩보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해 두 팔을 잃었다. 항생제 한 알을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손가락을 다치면 손을 잘랐고 그 손을 다시 다치면 한뼘만큼 윗부분을 또 잘랐다. 목숨은 건졌지만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장에 전기를 끌어다 쓰려고 서류를 들고 도청에 갔는데 공무원들이 ‘뭐 얻어 먹으러 왔냐’고 해요. 화장실에서 얼마나 울었나 모릅니다. 그때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좋아졌어요.”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여섯 딸이었다. 그 힘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수연소면 제작 기술을 배우고 공장을 차렸다.

 제품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하다 79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백화점이 생기면서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 사정에 밝은 백화점 직원이 ‘수연소면이 국내에서도 생산된다’는 얘기를 듣고 강 회장을 찾아왔던 것이다.

호암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 고문이 롯데백화점에서 수연소면을 사다 아버지에게 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걸 드신 호암이 우리가 어느 밀가루를 쓰냐고 물었다고 해요. 제일제당 직원이 부리나케 우리 공장에 찾아왔죠. 자기들이 만든 밀가루를 써달라고요. 허허.”

 수연소면의 쫄깃함을 만드는 또다른 비결은 숙성에 있다. 반죽을 만들고, 치대 길게 뽑아내고, 틀에 감고, 늘리고, 건조하는 공정 사이 사이 30~90분 가량 숙성 과정이 들어간다. 숙성을 거쳐야 글루텐이 충분히 형성돼 쫄깃한 면발이 나온다.

 반죽의 정도와 생산 과정에서의 온도·습도 역시 중요하다. 강식품에선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는 소금물을 직접 만들어 쓴다. 염도에 따라 면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내 온도는 늘 20℃ 안팎으로 맞춘다. 온도가 높으면 반죽이 쳐져 쫄깃함이 사라진다. 냉방시설이 없던 시절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3시부터 반죽을 시작했다. 강 회장은 그래서 평생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강식품은 88년 수출로 1억원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여 정부로부터 수출화 기업으로 지정됐다. ‘국수는 싼 음식’이란 인식 때문에 국내 판매 실적이 좋지 않아 수출에 주력한 덕분이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전량 국내 판매로 돌아섰다. 직원이 서른 명 안팎인 중소업체다 보니 환리스크 관리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 시장이 충분히 성숙했다는 판단도 있었다.

 “기자 양반, 먹어보니 어때요? 다르지요? 나는 우리 국민 모두한테 수연소면을 먹게 할 거요. 먹어보면 알 겁니다. 국수가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 있다는 걸 말이지요. 그게 내 꿈이요.”

 팔순의 노인이 서른의 젊은이에게 꿈을 말했다.

음성=정선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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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9/22/5895434.html?cloc=olink|article|default

2011-09-22 09:38:21 (119.204.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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